통계 이야기
인공지능 시대,
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황서이 | 중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1 | 들어가며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더 이상 기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AI는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넘어 유통과 소비의 전 과정에 깊숙이 스며들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화적 인프라이자 새로운 창작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음악, 드라마, 영화, 광고, 마케팅 등 우리가 즐기는 거의 모든 무대 뒤에는 이제 AI가 존재한다.
SNS에서는 ‘김햄찌’, ‘냠냠이’ 같은 AI 캐릭터들이 수만 명의 팔로워를 모으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정서적 교감과 위로의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신세계 까사(SHINSEGAE CASA)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AI 캐릭터를 브랜드 캠페인에 도입함으로써 초상권 부담을 줄이고, 감성적 소통을 강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였다.
방송과 광고, 영화 산업에서도 AI의 활용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의 ‘서울가요제’ 인트로 영상은 1980년대와 현재를 잇는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 AI로 제작하였다. 윤여정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복원한 디에이징(De-aging) 기술, 고(故) 임윤택(울랄라세션)과 터틀맨(거북이), 김현식을 AI로 재현한 공연, 지드래곤이 AI를 활용해 제작한 뮤직비디오 〈Home Sweet Home〉을 우주로 송출한 사례 등은 기술이 예술의 시간과 감정을 새롭게 복원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AI는 인간의 예술을 대체하기보다 감성을 확장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며, 예술의 지속성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의 영역에서 출발한 AI가 이제는 창작과 감동의 언어로 자리 잡으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2 | AI가 재구성하는 기획·제작·유통·소비
AI는 이제 콘텐츠 산업의 전 과정을 새롭게 쓰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낮추며 번역과 자막을 자동으로 제안하고, 확산모델(Diffusion Model)은 텍스트 입력만으로 고품질 이미지를 생성해 제작 효율을 높인다. 여기에 보이스 클로닝(Voice Cloning)과 모션 리타깃팅(Motion Retargeting) 기술이 결합하면서 배우와 가수의 목소리, 표정, 동작까지 정교하게 재현된다. 그 결과, 글로벌 보편성과 지역 특수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맞춤형 창작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KB라이프생명은 디에이징 기술을 활용해 젊은 시절의 윤여정 배우를 복원하며 세대를 잇는 감성 광고를 선보였다. 디즈니플러스 <카지노>에서는 배우 최민식이 AI 보이스 디에이징 기술을 적용해 30대 시절의 얼굴과 목소리를 되살렸다. 이 기술은 단순히 외형을 젊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배우의 실제 음성을 기반으로 과거 작품의 발성과 감정선을 학습해 자연스러운 젊은 목소리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제작진은 여러 버전의 음성을 실험한 끝에 연기 톤과 감정의 흐름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델을 선택해 최종 장면에 반영하였다. JTBC 〈웰컴투 삼달리〉에서는 고(故) 송해의 목소리와 표정을 딥페이크(Deepfake) 기술로 복원해 “전국~ 노래자랑!”의 상징적 멘트를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이 사례는 기술이 인간의 예술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을 복원하며 예술의 지속성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AI의 영향력은 이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이브(HYBE)는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Supertone)의 기술을 활용해 아티스트의 음성을 다국어로 구현하고, 신곡을 전 세계에 실시간 발매함으로써 글로벌 팬과의 소통 방식을 혁신하였다. SM엔터테인먼트의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aevis)는 AI 보이스와 시각특수효과(VFX)를 결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공연을 선보였다.
AI는 이제 기획·제작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까지, 콘텐츠의 전 생애주기를 재편하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는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흥행 가능성을 예측하고, 제작 단계에서는 영상·음향 합성을 통해 제작 시간을 절감하며, 유통 단계에서는 개인 맞춤형 추천으로 소비자 경험을 정교하게 확장한다. 이러한 기술의 도입은 단순한 효율화를 넘어 제작비 절감, 다언어 동시 유통, 글로벌 소비 확대 등 산업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AI는 창작의 문턱을 낮추었다. 전문 장비나 대규모 인력이 없어도 텍스트 한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음악이 작곡되며, 영상이 제작된다. 이제 팬은 완성된 콘텐츠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리믹스 영상이나 팬아트, 버추얼 무대를 직접 제작하는 참여형 창작자로 진화하고 있다.
3 | 엔터테크가 이끄는 새로운 무대
AI는 이제 단순한 제작 도구가 아니다. 콘텐츠의 기획부터 제작, 유통, 소비까지 전 과정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생성형 AI 콘텐츠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했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기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창작의 언어로 재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수용자의 몰입 경험 속에서 AI를 자연스럽게 녹여 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핵심 개념이 바로 엔터테크(EnterTech)다.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인 엔터테크는 음악, 영상,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에 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메타버스(Metaverse), 버추얼 휴먼 (Virtual Human)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즉, 엔터테크는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의 기술’, 그리고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경험의 기술’이다. OTT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고, 팬덤 경제가 확산되며, 창작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이 커질수록 엔터테크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 변화는 이미 일상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드래곤은 AI로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우주로 송출하며 창작의 경계를 확장했고, JTBC 〈얼라이브(ALIVE)〉는 세상을 떠난 가수의 목소리를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또한, K-pop 아티스트들은 AI 오디오와 버추얼 캐릭터를 활용해 수용자와의 소통 방식을 다층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엔터테크는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감성을 확장하는 기술이다. 기술이 예술의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무대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4 | 나오며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은 전 세계에 생성형 AI의 가능성과 충격을 동시에 안겼다. 불과 2년 만에 텍스트, 이미지, 음악,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가 AI를 통해 제작되며, 인간의 창작물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정교해졌다. 이제 생성형 AI는 보조 도구를 넘어 콘텐츠 제작의 실질적 주체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적으로 음악, 영화, 드라마, 방송·영상, 광고, 마케팅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에서 AI는 기획부터 제작, 유통, 소비, 그리고 팬과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2023년,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은 연대 파업에 돌입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처우 개선과 OTT 수익 배분이 주요 쟁점이었지만, 그 근본에는 AI의 도입이 창작자와 배우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자리하였다. 장기간의 제작 중단과 막대한 손실로 이어진 이 사건은 AI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노동 구조와 창작 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같은 해 4월, 드레이크(Drake)와 위켄드(The Weeknd)의 곡 〈Heart on My Sleeve〉가 AI가 생성한 가짜 음원으로 판명되며 주요 플랫폼에서 삭제된 사건도 있었다. 이 일은 플랫폼, 창작자, 기술 개발자 간의 법적·윤리적 책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이후 유니버설 뮤직(UMG)과 워너뮤직(Warner Music) 등 글로벌 음반사는 무단 사용을 차단하기 위해 핑거프린팅(Fingerprinting) 기술을 도입하며, 기술과 협력이 결합한 새로운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기술의 속도가 사회적 이해의 속도를 앞지를 때, 산업은 방향을 잃는다. 이는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할 때, 이를 이해하고 규율할 법·윤리·교육 같은 사회적 기반이 따라가지 못하면 산업 전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빠진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한 AI 콘텐츠 생태계를 위해서는 기술 발전만큼 윤리적 감수성과 사회적 기반, 법적 제도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창작자에게는 AI의 작동 원리와 영향력을 이해하는 윤리교육이, 수용자에게는 AI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이 콘텐츠는 AI로 제작되었습니다.’와 같은 명시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뮤직비디오나 버추얼 인터뷰 등에서는 AI 개입 여부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또한 ‘AI는 도구인가, 창작자인가?’,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원 저작자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가?’와 같은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시급하다.
최근 GPT-4o 등 생성형 AI는 개인 이미지를 캐릭터화하는 등 창작의 민주화를 이끌고 있지만, 동시에 저작권·초상권·책임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AI는 이제 전문가의 도구가 아닌 일상의 언어가 되었으며, 그만큼 사회적 이해와 제도적 대응이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결국, AI와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는 기술의 속도보다 ‘이해와 책임의 속도’에 달려 있다. 기술이 인간의 상상력과 윤리를 함께 확장할 때, 진정한 ‘엔터테크 시대’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