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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주택총조사 100년
모아보니 ‘대한민국 발전史’였다
박소정 ㅣ 조선비즈 기자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해가 돌아왔다.
센서스로도 불리는 이 조사는 통계청이 5년에 한 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가통계조사다. 센서스를 통해 얻어지는 통계는 인구·가구·주택 등
우리 삶에 관한 극히 ‘기초적’인 정보들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경제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록 자료다. 그런 센서스가 시행된 지 어느새 100년이 흘렀다.
100년 동안 쌓인 센서스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센서스 결과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변천사
1925~40조선총독부 조사가 ‘근대적 센서스’의 시초
1925년 10월 1일 0시 우리나라 첫 ‘센서스(총조사)’가 집계됐다. 당시 총인구수는 1952만2945명, 남자와 여자는 각각 1002만943명, 950만2002명. 오늘날과 비교해 절반 이하인 인구수,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았던 성비 등은 생소한 그때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진귀한 가치가 있는 한국 센서스의 효시이지만, 이것이 작성된 사연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최초의 센서스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실시했다. 당시 ‘간이 국세조사(國勢調查)’라는 이름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인구통계는 ‘통치’의 기본이 된다. 일제가 조선의 형세를 파악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는 데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925년 조사를 근대적 센서스의 효시로 보는 이유에 대해 통계청 관계자는 “유엔(UN)이 규정한 센서스 원칙 권고안에는 ‘영토 내 모든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보편성)’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동시성)’ 등의 기준이 있다”며 “(간이 국세조사는) 이런 기본 원칙을 상당 부분 따른 형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유사한 형태의 인구조사는 노비나 여자, 노인은 세지 않는 등 사람을 모두 포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적 의미의 센서스로 볼 수 없다”고 했다.
1944~55분단 후 인구 ‘뚝’… 전쟁통 한쪽 다리 잃은 男 많아
100년 전 시작된 센서스는 이후 5년마다 시행돼 왔다. 그런데 1940년대의 조사는 5년 단위로 똑떨어지지 않는 점이 관찰된다. 1945·1950년 시행됐어야 할 조사가 1944년과 1949년에 이뤄진 것이다. 이는 전쟁·해방의 역사와 관계 깊다. 중일전쟁 중이던 1944년엔 인력·물자 동원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엔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1년씩 당겨 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부터는 센서스 시행 주체도 우리 통계청의 전신인 공보처 통계국으로 바뀐다.
센서스 기록은 남북 분단의 현실도 보여준다. 1944년 2590만 명까지 지속해서 증가하던 인구수는 1949년 2018만9000명으로 고꾸라진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갈리게 된 기점을 전후로 한 변화다. 1944년 센서스가 남북한 인구를 합산한 마지막 통계인 셈이다. 다만 인구수가 절반으로 급감하지는 않는데, 해방 직후 인구 이동이 굉장히 잦았던 시기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전문가는 추정한다.
1955년 센서스엔 한국전쟁(6·25전쟁)의 상흔도 남아 있다. 당시 인구의 1%가량인 18만 명은 ‘불구자(不具者·몸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당시 표기)’였고, 이들의 70%는 남자였다. 남녀 모두 ‘농아(聾啞·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가 가장 많았고, 남자는 한쪽 다리가 잘리거나(‘족절단-단’)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실명-단’) 경우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1960~95출산 급증…아파트가 주요 주택 형태로 부상
1960년대 들어서 정부는 센서스 결과를 본격적으로 국가 정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막 태어나기 시작하던 시기로, 전후(戰後) 출산율 급증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던 때다.
이전까지 5년 새 6%가량 늘던 총인구수는 1955~1960년에 16% 넘게 증가했다. 1962년 공표된 ‘제1차 경제개발오개년계획’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족계획(산아제한)’ 정책을 포함했는데, 여기엔 ‘인구총조사 자료를 활용한다’는 표현이 적혀 있다.
자연스레 이 시기 미래 인구 추계도 시작됐다. 센서스 인구를 기초로 출생·사망, 인구 이동을 고려해 미래의 인구를 예측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첫 공식 인구 추계로 1964년 발표된 ‘한국의 신인구 추계(1960~2000년)’에 따르면, 당시 인구 정점은 1980년(4193만 명)으로 추정된 바 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1970년대 센서스는 본격적으로 가구의 ‘부(富)’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1970년 가정집(전체 557만6000가구)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가전·전자기기는 라디오(404만3000가구)와 재봉틀(244만6000가구)로 집계됐다. 피아노 및 올갠(오르간·6만1000가구), 냉장고(12만7000가구)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국민의 문화생활 양상 내지는 중산층 규모를 측정하는 척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엔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집중 문제가 대두됐다. 1985년 도시별 1㎢당 인구밀도는 서울시가 1만5921.1명으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뒤를 부산시 (8088.8명)·인천시(6713명)·대구시(4460.6명)가 이었다. 오늘날 부산·대구 인구 밀도는 그 당시와 비교해 반토막 났는데, 반면 경기도는 그때와 비교해 세 배나 높아졌다.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던 1990년대엔 주택(716만386채)의 23% (162만8117채)가 아파트였다. 여전히 단독주택(66%·472만6933채) 형태가 대부분 이었지만,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의 주택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지금은 아파트 비중(64%)이 가장 높다.
2000~25기혼 女 93% “자녀 더 안 낳아”… 3집 중 1집 ‘혼자 산다’
2000년 한국은 ‘Y2K(컴퓨터 2000년 연도 인식 오류)’ 문제가 전국적으로 우려를 불러일으켰듯, 개인용 컴퓨터(PC) 보급 속도가 빨랐다. 전체 가구(1431만126가구) 중 21.7%(310만9559가구)가 인터넷 회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5년부턴 본격적으로 저출생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15세 이상 기혼 여성 1441만3990명 중 93%(1334만3585명)가 ‘추가 자녀 계획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회의 개인화도 급속도로 이뤄졌는데, 1975년 4.2%에 불과하던 1인 가구 비율은 2020년 세 집 중 한 집꼴(31.7%)로 비중을 크게 늘렸다.
센서스 질문 항목이 보여주는 그 시대 관심사
센서스를 구성하는 질문 항목은 그 시대의 ‘관심사’를 대표한다. 1925년 최초의 센서스에선 성명, 성별, 출생연월일(당시는 출생연월), 배우 관계(혼인 상태), 민적·국적(당시는 본적·국적) 등 단 다섯 개 항목만 조사했다. 이는 인구의 기본 항목으로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00년 전 다섯 개로 시작했던 센서스 항목 수는 오늘날 55개에 이른다.
‘手足 절단’ ‘문맹 여부’ 묻던 일제강점기·한국전쟁 이후
일제강점기에 센서스는 전시 동원 인력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됐다. 중일전쟁 중 실시된 1940·1944년 센서스가 그렇다. 1940년엔 ‘지정(指定·행정 관청이 자격을 준) 기능’ ‘병역 관계’ ‘출생지’ ‘본적지’ ‘소속 산업 및 직업’(1937년 7월 1일 중일전쟁 시작 시기와 1940년 10월 1일 현재 기준)을 물었고, 1944년 조사에서도 비슷한 항목이 포함됐다.
6·25 전쟁 후 실시한 1955년 센서스에선 장애 상태를 조사하는 항목이 등장했다. 당시엔 ‘불구자’란 용어가 쓰였는데, 전쟁 후 부상 정도를 파악하려다 보니 항목도 ‘실명(失明)-양(兩)·단(單)’ ‘수절단(手切斷)-양(兩)·단(單)’ ‘족절단(足切斷)-양(兩)·단(單)’ ‘농아(聾啞)’로 구성된 식이었다. 1980년에는 심신 장애라는 조사 항목으로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 이상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는 가구원이 있는지도 조사되기 시작했다.
문맹 여부를 조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엔 ‘가나(仮名·일본어)를 읽고 쓸 수 있나?’ ‘한글(諺文)을 읽고 쓸 수 있나?’를 물었고, 1970년 ‘글을 읽고쓸 수 있나?’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문맹 여부를 묻는 항목은 사라졌다. 지금은 교육 정도나 전공을 묻고 있다.
영유아 사망이 흔했던 1960년부터는 ‘총출생아 수’를 묻기 시작했다. 특히 1966년부턴 총출생아 수를 ‘생존 자녀 수’와 ‘사망 자녀 수’로 구분해 조사하게 했다. 이는 가장 최근 센서스까지도 포함된 항목이었는데, 올해부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 등을 수용해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2005년에는 저출생 문제가 부각되면서 ‘추가 계획 자녀 수’도 묻기 시작했다.
집에 ‘아궁이·변소’ 있느냔 질문, 40년 뒤엔 ‘휴대폰·車’로
인구뿐 아니라 ‘주택’에 관해서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이다. 당시 부엌·목욕실· 광·전등·라디오·외양간 유무를 조사했다. ‘시멘트’ ‘수세식’ ‘토혈식(土穴式·흙구덩이)’ 등 변소 형태나 아궁이 형태도 물었다. 같은 질문도 집의 형태가 바뀌면서 항목이 변화했다. 1970년엔 주택 급수 시설, 1980년엔 목욕 시설 형태를 물었다. 1960년 ‘개인’ ‘호텔·하숙’ ‘공공건물’ 등으로 단출했던 ‘거처의 종류’ 항목도 오늘날엔 ‘아파트’ ‘오피스텔’ 등 10가지로 그 종류가 대폭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선 자동차 보유 대수 항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인터넷 활용 상태와 개인 휴대용 통신기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묻는 항목도 등장했다. 개인 휴대용 종류로는 ‘이동전화기’ ‘무선호출기’ ‘없음’이 제시됐고, 이를 ‘매일’ ‘일주일에 1번 이상’ ‘한 달에 1번 이상’ 등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도 고르도록 했다.
올해 새로운 항목은?… ‘저출산·돌봄·다문화’ 초점
센서스는 기본적인 사회 실태 파악뿐 아니라, 당시의 ‘주요 정책’ 수립을 위해 필요한 자료로서도 수집된다. 이 때문에 통계청은 센서스를 시행하기 전 사회 각계각층과 정부 부처의 요구·자문을 받아 항목 선정에 공을 들인다.
저출산·고령화 이슈가 당면한 큰 위기인 올해엔 ‘비혼 동거’ 항목이 처음 생긴다. 사실혼을 포함해 어떤 혼인 형태도 이루지 않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가구의 현황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이는 저출생 문제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금은 혼인 신고를 한 대상자 위주로 정책이 만들어지는데, 법적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며 “비혼 동거하는 가구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정확히 측정해 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전통적 형태의 가족을 넘어서 확장된 개념의 가족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됐다’는 의식을 국민에게 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덧붙였다.
‘가족 돌봄 시간’과 관련한 항목도 구체화해 추가된다. 통계청 관계자는 “장애·건강· 고령 이슈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가족 내에서 ‘누가’ ‘얼마나’ 돌보고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라며 “학교를 가야 하지만 집안에 돌볼 사람이 필요해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영케어러’ 이슈에 대해 파악해 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다문화 가정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도 처음 묻게 된다.
100년째 기록 완성할 올해 센서스 “꼭 참여해 주세요”
21번째이자 100년째 센서스인 ‘2025 인구주택총조사’는 올해 10~11월 실시된다. 여기서 도출된 결과는 그간 써 온 역사서에 또 한 장의 보탬이 될 전망이다.
다만 높은 통계의 중요성에 비해 낮은 호응도는 통계청의 고민거리다. 개인 정보를 남에게 선뜻 공개하기 꺼려하는 세태 탓이다. 이 때문에 통계청 사람들은 센서스 질문지의 한 항목을 넣고 빼는 데도 수십 번의 회의를 거친다. 항목 수를 한꺼번에 확 늘릴 수도 없고, 응답자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차별적일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올해 센서스 항목의 개수는 55개다. 항목에 응답하는 데는 1인당 10분, 2~3인 가구원이라면 20~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통계법 33조에 따르면, 조사되는 내용은 비밀이 엄격히 보장되기에 남에게 누설되지 않으며, 조사 중 알게 된 사항은 통계 생산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제공되지 않으므로 안심해도 된다.